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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2-06 00:38:23, Hit : 12743, Vote :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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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중국 쓰촨 깐수 샨시를 다녀와서


*** 중국 쓰촨 깐수 샨시 북서 3개주 여행기---샨시성 화산과 진시황유적지를 중심으로 ***



    1.여행기에 들어가며


금년도 저물어 가는 12년11월,
금년의 히말라야트레킹(네팔14박15일)과 백두산 야생화 탐방에 이어 가보고 싶은 남미(마츄픽쳐. 유유니사막 등)와 아프리카(케냐 탄자니아의 세렝게티초원과 응고룽고로 . 나미비아 등)를 가보질 못하는 대신,
큰애가 10여 년째 살고 있는 중국 쓰촨성(四川) 省都인 청뚜(成都)에 가정사를 살피러 갈 일이 생겨, 그 동안 꿈꾸어 왔으나 미뤄왔던 실크로드(丝綢之路, 수천 km)를 여행해 보고 싶은 생각을 실현해보고자 계획을 세웠다. 물론 시발점인 샨시성 시앙(西安)에서 깐수성(甘肅省) 란저우(兰州)를 거쳐  신장웨이우얼(신강위구르,新疆維吾尔)자치구 우루무치(烏魯木齊)를 지나 서역국에 이르는 전 로선을 한꺼번에 탐사할 수 없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우선 란저우 근처를 둘러보고 시발점인 시앙(西安)을 둘러볼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깐수성 서쪽지역과 중국에서 가장 큰 면적(중국전체의 1/6)으로 이슬람교자치구인 신장지역은 나중에 기회를 봐서 둘러볼 예정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날씨와 일정이 도와주지 않아  그마저도 실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돌아본 일정 중 샨시성의 화산과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답사 후기를 중심으로 써보고자 한다. 부언해 둘 것은 이번 여행은 우리집 반려자인 아내와 함께 쓰촨성에 유학 가서 장기간 거주 중인 큰애와 함께 애 친구를 여행의 동반자, 통역 겸 가이드로 활용하기로 했다.


    2.쓰촨성과 깐수성, 그리고 샨시성 시앙

가. 들어가며

먼저 이번에 둘러본 주요 지역의 지역적 환경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여행과정을 개략적으로 요약해보고, 장을 바꿔 화산과 진시황 유적지 중심으로 여행기를 정리해 보겠다

나. 쓰촨성 청뚜 : 쓰촨성은 예부터 하늘에 오른 것 만큼이나 지리적으로 접근이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험준한 지세를 자랑하는 지역이었으나, 요즈음은 항공 고속도로 철도 등 교통편의 발달로 중국 4대 도시중의 하나로 발달한 성도인 청뚜를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인구는 2011年末 기준 全省常住人口 8050万人으로 알려지고 있으며(분리된 충칭직할시 제외) 대체로 서고동저형으로 서부고원 산지는 해발 4,000미터 이상, 동부는 분지 구릉으로 해발 1000~3000미터 지세를 이루고 수많은 천연자원을 관광지로  보유하고 있다. 인구 1400만(2007년: 1112.3만, 2010년 기준 1,339,724,852)을 헤아리는 풍요의 고을로 불리어온 쓰촨성 성도인 청뚜는 삼국지 유비 촉한의 도읍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1월 평균 온도 5도C 내외를 유지하는 분지형 지대로 중국의 서부대개발 정책에 힘입어 상무 금융 통신 등의 서부 중심지역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몇 년 전 여행시에  구채구, 황룡, 후난성 장가계, 원가계, 성도 시내의 무후사 두보초당 등을 살펴 본 바 있어 별다른 여행일정은 생략하였고, 시내 곳곳을 두루두루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온 도시가 다 뒤집어지듯 퍼헤쳐 지고 있으며 우후죽순처럼 빌딩이 올라가고 신도시 개발이 한창인 모습이 그저 경이롭기만 했다.



<청뚜의 대표음식: 화궈>



<한국의 명동:춘시루 거리>

다. 깐쑤성 란저우 : 실크로드의 중간지대인 중국 북서부 지역으로“河西走廊 黄土高原”으로 불리며 동서간 1655km, 남북530km, 해발 1500m~3000m의 고원지대로 年平均降雨量 약 300mm(40-800mm 내외)인구2600만의 이슬람 다수 국가지역이고, 한마디로 산에는 일부 조림을 하여 녹화사업을 하고 있지만 수목이 거의 없는 황량함 그 자체인 지역이다. 깐수성 성도인 란저우(兰州)는 도심으로 싯누런 황하가 흐르는“西部黄河之都,丝路山水名城”으로 불리는 황하상류지역으로서 인구는 약 360만 정도로 年平均降水量이 327mm에 불과하여 온 시가지가 누런 황사 먼지로 뒤덮여서, 극심한 교통체증과 공업도시의 명성에 걸맞게(?) 발생하는 극심한 매연과 겹쳐 체류하는 동안 내내 목이 따끔거렸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란저우 근처 황량한 산하>

“冬无严寒,夏无酷暑”로 불리고 둔황 막고굴 등 100여 지역에 석굴을 가진 석굴예술의 고향이며 치차이산(七彩山),黃河石林, 鳴沙山과 月牙川의 사막풍경 등 수 많은 볼거리가 산재하나 2박3일의 짧은 여정에 불과하여 빙링쓰석굴(炳靈寺石窟)과 黃河石林만을 둘러볼 계획을 세웠으나, 유가협을 거쳐가야 하는 빙링쓰석굴(炳靈寺石窟)도 황하물의 수위가 높아져 유가협의 유람선을 운행할 수 없다고 해서 시내관광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고, 10인승 차량과 운전기사를 교섭하여 백은시 경태현에 있는 황하석림을 향해 야심차게 출발하였으나 1시간 이상을 달려 백은시까지는 도착하였으나 폭설이 내려 되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쓰촨성 청뚜에서 새벽7시10분에 사천항공을 타고 이륙하여 8시20분에 란저우의 중천공항에 도착하였는데, 회교 모자를 쓴 사람들이 공항청사에 눈에 많이 띈걸 보니 회족이 많이 거주하는 곳임을 실감하겠다. 공항로비 바닥에서 진지하게 열심히 기도하는 이슬람교도 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화교를 받아들인 깐수성 답게 회교교회 및 회족 복장차림 사람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시내까지 택시로100km나 달려 호텔에 도착하였고, 운전기사가 안내해준 뒷골목 란저우뉴러우미엔(兰州牛肉麵)식당에 들러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란저우의 특별한 음식, 뉴러우미엔(牛肉麵)을 먹었다. 과연 명불허전이다. 황하를 만나러 갔다. 이름에 걸맞게 누런 힘찬 물줄기가 손문을 기념하여 중산교라고도 불리는 100년이 넘은 철교(黃河第一橋)를 지나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황하의 이 모습 저 모습>



강 건너 북쪽에 있는 백탑산에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러 갔으나 손님이 없어서 인지 1시도 되지 않았지만 담당자들이 퇴근했다고 운행을 하질 않는단다. 할 수 없이 걸어서 올라갔는데 가는 장날이라고 백탑을 비롯해 곳곳이 보수 중이다. 백탑산공원은 산 정상에 백탑사(白塔寺)가 있어 백탑산이라 불린다. 수많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정방형의 백탑사 중앙에 우뚝솟은 백탑을 볼 수 있었다. 아래는 둥근 기단이 있고 그 위로 탑이 세워졌다. 백탑사에 있는 백탑은 원대(元代)에 티베트 싸자파[萨迦派]의 한 라마(喇嘛)가 칭기즈칸을 알현하기 위해 몽골로 가던 중 란저우[兰州]를 지나가다 병사하고 말았는데, 사람들이 그를 기념하기 위해 산 정상에 백색의 탑을 세웠다고 하는데서 백탑산이라는 지금의 명칭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탑의 각 면에는 불상이 조각되어 있고, 처마에는 풍경이 달려 있다. 백탑산공원에 오르면 란저우 시내와 황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백탑산공원 앞에는 황하강을 가로질러 놓인 철교가 란저우 시내와 더불어 한 눈에 들어오며, 중국의 젖줄인 황하강이 눈앞을 가로 막으며 흐르고 있으나, 뿌연 안개가 끼어 있어 시야가 밝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백탑산을 내려와 황하강변을 둘러 보고 황하모친상도 들리고 깐수성박물관을 둘러보니 실크로드 문명, 자연자원 등과 위진한당나라의 황하문명이 잘 정리되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저녁식사는 신장위구르자치 음식인 양꼬치 등으로 먹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황하석림을 보기 위해 부지런을 떨었으나 결국은 폭설로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으며, 대신 시내로 되돌아와 오천산 공원 등 시내관광과 골동품거리, 회교사원 탐방, 재래시장(야시장)을 탐방하여 별식을 먹어 봤다. 초등학교 하교 시간에 많은 학부모 들이 교문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걸 보았는데, 이유가 하나 밖에 없는 자식 들을 안전하게 하교시키기 위해서 그러는 거란다. 참.


<백탑산에서 내려다 본 중산철교와 황하>


<황하 모친상>




<야시장과 골동품 거리>



<란저우 대표 음식; 란저우 우육면>


라. 샨시성 시앙 : 새벽5시에 일어나 1시간 걸리는 시앙(함양공항)을 향해 해남항공을 타고(8:35이륙) 출발하였다.
2011年末 기준 全省常住人口 약 3742.6万人 이며, 세계 4대 역사도시 중 하나이며 중국 4대 고도 중의 하나인 시앙은 인구가 8백만이 넘는 도시로서, 도시 전체가 유적지의 보고이며 13개 왕조가 1180년 동안 도읍지로 정하였던 곳이다. 적어도 5일 이상은 둘러 봐야 어느 정도 섭렵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화산 등정을 포함하여 3박4일 일정이므로 매우 빠듯한 시간이다.
시내의 중요한 유적 관광지만 하여도 고성 성루, 종루, 고루,황궁, 청진대사.대자은사 등 사찰, 비림, 시앙. 반포. 섬서. 함양. 무릉. 역사 박물관, 화청지, 진시황병마용박물관 등의 진시황유적지 이외에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볼거리가 산재하며, 화산. 태백산과 황룡강폭포 등 자연경관이 무수히 많이 있다.
우리는 시내 호텔에 여장을 푼(호텔 보증금이 상당하다) 후에  유명한 만두집에서 여러 종류의 만두를 먹고 난 후, 시내관광에 나섰다. 종루, 고루, 청진대사를 거쳐 내성 외성 외곽성 등 3중성으로 이루어진 황궁성 중 내성 서문(안정문)을 올라 한국 성곽과 비교가 되질 않는 넓이의 전탑으로 쌓은 성---폭이 족히 15m 이상 20m 정도는 되어 보이는 성곽 윗길(거리는 10km 이상) 중 약3km 정도(남문까지)를 걸어 본다. 시간 관계상 자전거를 타고 달렸지만...




<시앙성 서문과 남문 성곽 위 모습>

성곽을 내려와 비림박물관으로 향했다. 북송년간(1807년)에 세워진 비림에는 비석 묘지석 약 4000점, 능묘석각실, 불교석각조각상 등 말 그대로 비석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감탄 그 자체를 넘어 전율이 온다(입장료 75위안이 아깝다고 입장을 망설이던 애 들이 입장하길 잘 했다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비림의 이모 저모>


오는 길에 택시를 잡기가 너무 힘들어 삼륜오토바이차를 불러 타고 왔다. 저녁 후에는 낮에 둘러본 청진사 인근의 회족거리를 둘러보고 기념품 몇 개를 샀다.
다음날은 동측으로 120km 정도 떨어진 화음현에 위치하는 중국 5악 중의 하나인 화산(華山)을 가기 위해 8:10에 출발하는 고속전철을 타기 위해 시앙북고속전철역으로 향했다. 화산북역에 30여 분만에 도착하여 화산으로 향했다. 역사가 무척 크고  쾌적 쾌속 고속열차다. 돌아오는 길에는 2급고속전철을 타고 40분 만에 시앙북역에 도착했다.
셋째날은 화청지와 진시황릉 유적지를 보기 위해 시앙역에 아침일찍(9:10)에 도착하여 시외버스를 탔다. 10시 경에 화청지에 도착하여 둘러보고 난 뒤, 가까이에 있는 진시황병마용박물관으로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만감이 교차한 관람이었다. 시외버스로 시앙역에 도착한 후 삼륜오토바이차를 타고 6:45에 숙소에 돌아왔는데, 역주행 까지 서슴치 않는 삼륜오토바이차는 앞으로 절대 다시는 타지 말 것을 애들에게 부탁하였다. 저녁에는 시내 지하철을 타고 면 길이가 3m에 달하는 칼국수 종류의 음식을 제공하는 “천하제일면”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다음날은 월요일이라 박믈관 등이 휴관한다고 하여 지하철을 서둘러 타고 대안탑으로 유명한 “대자은사”를 급하게 둘러보고 12:25발 인천행 아시아나항공을 타러 함양공항으로 향했다.





<화청지 이모습 저모습>




<대자은사와 대안탑, 맨아래는 대안탑 내부에 있는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는 사리함>


  3.샨시성의 화산(華山)  


동쪽으로 120km 정도 떨어진 샨시성 화음현에 위치하는 중국 5악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화산(華山)을 다녀왔다. 연화봉 등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 화강암 등 기암괴석으로 형성되어 있는 연꽃 모양의 봉우리가 절벽 위에 얹어져 있는 형상이며,  2154.9m 높이의 남봉이 최고봉이다.



화산은 도교의 본산 역할을 하는 영산으로 다 아시다시피 중국의 오악(산동성의 태산, 하남성의 숭산, 후난성의 항산, 산시성의 형산, 그리고 화산)중 서쪽에 있는 서악이다. 물론 지금은 이 보다 크고 높고 유명한 산 들이 중국에 많다. 이는 중국영토가 중원에만 있었을 때 이 다섯 산이 최고 명산이었다는 얘기로서 중국이 서북 서남으로 커지고 난 지금은 순위가 많이 조정 되어야겠지요.
오악중에 현대 중국명산 10위권에 드는 건 `태산`정도로 보는 것 같습니다만, 화산은 화강암덩어리를 이루는 말 그대로 시원하고 웅장한 명산이더군요.
중국 청나라 위원(魏源)은,

항산은 걷는 것 같고 (恒山如行),
태산은 앉은 것 같고 (泰山如坐),
화산은 서있는 것 같고(華山如立),
형산은 날아가는 것 같고 (衡山如飛),
숭산은 누워있는 것 같다(嵩山如臥)

고 했답니다.
정말 대장군이 장군검을 들고 서있는 형상입니다.
듬직한 산이로되 까마득하게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절벽으로 이루어진 무서운 산이었습니다.
중국의 여러 산들을 보고 있자면, 어렸을 적에 중국 산수화에 나타나는 기암괴석, 협곡, 산수 등을 보고 과장된 허풍이라 생각했었는데 중국산수화의 그 수많은 기법들의 진정성을 점차 인정 안할 수가 없었다. 이번 화산을 보고 더욱...







경내 버스(왕복)40위안, 케이블카탑승(왕복)150위안, 화산 입장료180위안. 합 370위안(한화 약66,000). 11월 하순으로 관광시즌이 아니고 봉우리에는 흰눈이 소복한 계절인데도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걸로 보아 중국인구의 무한함과 상당히 비싼 입장료 등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엄청난 걸로 보아 소득 등 생활 수준이 급극하게 향상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북봉을 둘러 보고 찰이암 창룡령 오운봉을 거쳐 오운봉반점에서 애들이 가져온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사서 부어 먹는 것으로 값싸고 실속 있게 점심을 해결하였다.  바위를 파서 만든 수직의 올라오는 돌계단인 창룡령-화산에서 제일 소문난 험도로 푸른 용의 등을 닮았다는-에 얼음이 얼어 있어 힘들었지만,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면 넋을 빼앗는다. 옅은 안개가 조금씩 걷히며 넓게 펼쳐지며 보여주는 운해와 거대 암릉 연봉들의 장관이 피로를 잊게 한다. 고개를 들어보니 천길 낭떠러지 절벽이 눈앞을 가로 막는다.





<오른쪽 천길 절벽 위가 서봉, 오늘의 목적지>

북봉은 운해의 풍광이 아름답다고 하여 운대봉이라고 한다는데 정상 표지석에는 華山論劍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 이는 불세출의 무협 작가 “김용”이 화산을 중심무대로 하여 활동하는 검술로 유명한 역사적 실존인물들을 무림고수로 등장시키는 내용으로 서술한 <사조영웅전> 이라는 무협 소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북봉은 3면이 천길 낭떠러지로 위에서 내려다보니 가히 기개 있으되 품위 있는 모습의 절경이다.
사랑의 맹서를 하는 의식의 하나인 수 많은 열쇄가 사람들의 안타까운 집착처럼 쇠줄에 매달고 있는 금쇄관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깃들고, 이곳을 지나니 비교적 평탄한 빙판길이 나타나고 숲속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금쇄관의 열쇄>

오늘 시앙에 돌아가야 하고 오후 6:02에 출발하는 예매해 놓은 고속전철을 타야하니 서둘러야 했다. 곧장 남천문을 지나 남봉(낙안봉, 2154.9m)에 도착했다. 기러기가 날아와 앉아 있는 모습이라 하여 낙안봉(落雁峰)이라고도 하는 화산 최고봉. 한눈에 들어오는 동봉 서봉 중봉 등 고산준봉, 기괴한 봉우리에 인간의 하찮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과연 신선이 살만 한 듯>

남봉에서 내려와 거의 직벽에 가까운 바위길을 더듬어 화산에서 제일 큰 도관인 취운궁을 지나 서봉 정상(2082.6m,연화봉)으로 올랐다. 정상은 넓은 너럭바위로 되어 있어 과연 수많은 시인묵객이 풍류를 즐기고 도인들이 좌선에 들기 위해 자주 찾는 곳이라 할 만하다. 거대한 연꽃모양의 하나의 바위가 수백척 절벽위에 서있는데 험준함과 수려함을 말하려 한들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직접 보는 수밖에. 취운궁 옆에는 또 하나의 큰 돌이 있어 마치 도끼로 쪼갠 것 같이 중간이 갈라져 있는데, 부벽석 (斧劈石)이라고 부르면서 부근에 긴 도끼 한 자루를 세워 놓았다.
우리는 멀리서 동봉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서둘러 하산하였다. 동봉과서봉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는 것이 화산여행의 백미라는데 일정상 볼 수 없어서 너무나 아쉽지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아직도 화산의 드높은 하얀 절벽과 웅대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깍아지른 절벽위에 앉은 서봉>


<동봉 인근 경치>

화산이 있는 화인시(华阴市) 화음현은 화산관광수입 덕분에 삶을 풍요롭게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느꼈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은 탓인지 안내 표지판에는 중국어와 영어와 일본어 이외에 한국어를 병기해놓았다.


4.진시황 유적지---진시황병마용갱을 중심으로  


가. 진시황은 누구인가

진 시황제(중국어: 秦始皇帝, 병음: Qín Shǐ Huáng Dì, 기원전 259년 1월 生~ 기원전 210년 음력 9월 10일 卒)는 진나라의 제31대 왕이며, 중국 최초의 황제이다. 이름은 영정(嬴政)이며, 조나라에서 출생하였기에 조정(趙政)이라고도 한다. 진 장양왕 영자초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당시 세도가 대단하던 조나라의 상인 출신의 승상 여불위(呂不韋)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기원전 247년부터 기원전 210년까지 재위기간 중 기원전 247년부터 기원전 241년까지 여불위(呂不韋)가 섭정을 하였고 기원전 241년부터 기원전 210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을 하였다.
불로불사에 대한 열망이 컸으며, 대규모의 문화탄압사건인 분서갱유사건을 일으켜 수 양제와 더불어 중국 역사상 최대의 폭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도량형을 통일하였고 전국시대 국가들의 장성을 이어 만리장성을 완성하였다. 분열된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 제도와 군현제를 닦음으로써, 이후 2천년 중국 왕조들의 기본틀을 만든 군주로 여긴다.
하지만, 전근대의 중국에서는 특히 유학 관료들에 의하여 폭군이라는 비판을 계속 받아 왔었으며, 오늘날 중국 한편에서는 병마용 발굴 이후부터 진시황제의 진취성과 개척성에 초점을 맞추어 재평가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도 한다.
진시황은 기원전 230년부터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중국 통일을 위한 통일 작업을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가장 세가 약했던 한나라부터 멸망시켰다. 이어서 조나라, 위나라, 초나라, 연나라를 차레로 멸망시킨데 이어 기원전 221년에 드디어 마지막 남은 제나라까지 멸망시켜 영정의 나이 39세에 전 중국 땅을 마침내 통일하였다.

진시황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책을 압수하거나 학자들을 생매장한 (460명) 분서갱유와 폭정, 불로장생의 약, 아방궁 등 부정적인 면이 먼저 떠오르는 것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며, 만리장성(동원된 인부가 150만여 명), 나아가서는 70만 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함양 근교의 여산 전체에 자신의 능묘를 건설토록 한 것 등이 우선 생각난다고 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나. 진시황릉

진시황릉은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제의 묘지이다. 여산, 또는 역산(酈山)은 산시 성 시안에서 30km 떨어진 동현의 원산원(驪山園)에 있는 야산이다. 기원전 247년에서 210년까지 38년간 공사를 했으며, 지금의 황릉의 무덤은 47m 높이로 릉원은 49평방km로 설명되고 있으며, 역사 사마천 사기의 진시황본기 편에 따르면 시황제 즉위 초부터 여산(酈山)에 무덤을 착공하였다고 한다. 진시황릉은 지하 궁전으로 지어졌으며 완공이 된 후에는 도굴을 막기 위해 인부들을 생매장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진시황릉은 병마용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며 발굴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어느 곳이 정확한 위치인지는 알기 어렵다. 지금의 진시황릉은 다분히 황릉의 위치나 규모 그리고 역사적 의미만을 알려주는 전시용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며, 입구에서부터 정상까지 가는 200m 정도의 계단을 설치하였지만 지금은 올라 갈 수 없도록 통제하고 있다. 지금도 넓은 산에 발굴이 계속 중이며, 언젠가는 발굴이 끝나 실체를 밝힐 것으로 예상할 수 있을 뿐이다.
진시황의 사후 함양으로 들어온 항우가 30만의 병사들을 동원해서 도굴을 했다는 기록과 황소의 난 때 이곳을 도굴하여, 외부로 노출된 쇠붙이는 모두 도굴해 갔다는 기록이 있어 여러 번 외벽의 도굴이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사마천의 《사기》에는  엄청난 양의 수은을 이용하여 지하궁전을 지었다는 기록(사마천의 기록은 진시황릉이 완공된 후 1 세기가 지난 때에 저술된 것이다)이 나오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수은으로 인해 지하궁전은 완전한 도굴이 힘들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1987년, 이곳은 병마용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진시황릉>


<출토된 마차의 축소판>

다. 병마용갱

병마용갱(兵馬俑坑)은 중국 샨시성 시앙시 린퉁구(臨潼區)에 있는 진시황릉에서 1km가량 떨어져 있는 유적지로, 흙을 구워 만든 수많은 병사, 말 등의 모형이 있는 갱도이다. 1974년 농민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되어 지금까지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었다.
병용은 키가 184cm에서 197cm로 큰 편이며 장군상이 조금 더 크게 만들어져 있다. 병마용은 전사, 전차, 말, 장교, 곡예사, 역사, 악사 등 다양한 사람과 사물을 표현하고 있다. 발굴된 갱도에는  모두 8천여 점의 병사와 130 개의 전차, 520 점의 말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아직 상당수가 흙 속에 묻혀 있다.
병사, 말 등을 흙을 사용하여 등신대로 제작하여 구워 만들었다고 한다. 진시황제는 기원전 210년 사망하였으므로 그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상 1호갱>

1호 갱: 1974년에 발굴되었다.총 14,260제곱미터이며, 진용 약 6000구에 전차 40대가 발굴되었다.
2호 갱: 기병과 근위대의 용병이 있다.
3호 갱: 1976년에 발굴되었으며,완전 발굴된 520제곱미터의 3호갱은 지휘부로 추정되는데, 장군의 것으로 보이는 채색된 전차 1량과 갑옷 입은 보병용 64건, 마용 4건이, 진용 78건, 전차 1대가 출토되었다.




<이상 2호갱>



<이상 3호갱>

라. 진시황릉과 병마용을 둘러보다.

우선 어머어마한 규모와 스케일에 놀랐고, 한 인간의 탐욕(얼마나 많은 백성이 희생 되었겠는가.)에 두 번 놀랐고, 죽은 진시황이 중국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아이러니에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1호갱에 전시된 병마용갱 이외에도, 2호, 3호갱이 개방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도 계속 발굴되고 있어 얼마만한 규모의 릉이 축조 되어 있으며 병마갱이 조성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 싶다. 일부러 발굴을 늦추고 있다는 얘기 까지 회자하고 있으니 말이다.  
2천년 동안 묻혀 있다가 햇빛에 드러나면서 채색된 색상이 바랬다고 하며, 똑같은 모양을 가진 것은 없다고 한다. 관람객은 얼마나 많은지(입장료150위안!) 1호 2호 3호갱을 둘러보고 진시황제박물원을 둘러 보았다. 내부에서 삼각대를 사용해서 사진을 찍을 수 없게 하고 있으나 내부가 어두워 도저히 노출을 잡을 수 없어 부득불 삼각대를 사용하다 공안에게 몇 차례 경고를 받기도 했다.
글쎄 진시황이 광대하고 어머어마한 유물을 남긴 탓에  2천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치적에 대해 찬양까지 받고 있다고 하는 데는  새삼 고개가 갸우뚱거려지지 않을 수 없다. 제발 현존하는 다른 독재자가 욕심을 부려 헛된 모방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병마용 얼굴 앞뒷모습>




<덮개? 속에 비밀이 있는 듯>


    5.여행 소감 정리---질주하는 중국

3개성 성도(省都)를 중심으로 돌아본 대도시의 교통 의식-마이카시대가 도래한 80년대 말 수준임-만은 시급히 개선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너무나 위험한 곡예운전이 일상화 된듯하다
개발 광풍이 도시 전체에 휘몰아치는 현상에 전율을 느낀 것이 사실이며, 이에 따른 고층빌딩 건축 붐, 바닥 면적이 어머 어마하게 큰 건축물 등. 청뚜 신도시에는 세계최고로 넓은 건물(건물 길이가 500m)이 들어서 있다.
결코 무시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유구한 역사와 문명과 문화를 가진 나라, 우리나라 보다 훨씬 비싼 입장료로 엄청난 관광수입을 챙기는 중국 , 가는 곳 마다 사람 사람 사람으로 붐비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는 모르겠다.

  태초의 야생초원과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사막. 석굴 등 천혜자원을 가진 실크로드의 마지막 길 신장위구르자치구와 깐수성 서쪽 끝 동네를 꼭 가보고 싶다.
애들 덕분에 느슨한 여행계획으로 언어소통 장애 없이 음식도 잘 골라서 골고루 맛보고 여유 있는 일정을 소화하며, 택시는 물론 삼륜오토바이, 영업용 승용차, 케이블카, 시외버스, 지하철, 국내선 항공편, 고속철 등 교통편을 골고루 이용해보고 알찬여행을 해서 보람 있게 생각한다.
여행의 목적인, 사색과 깨달음의 시간 진정한 겸손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 중국의 젖줄----황하는 영원히 흐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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